독서철학

 

 The flesh, alas, is sad, and I have read all the books. - Stephane Mallarme

  

당신은 지금부터 다른 이의 생각을 마음껏 들여다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법적인 제재도, 도덕적인 비난도 존재하지 않다. 그저 남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지' 만을 준비하면 된다.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냐고 되묻는 이들이여. 바로 독서가 그런 수단임을 알려주고 싶다.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지줄대고, 독자는 내키는만큼 그것을 흡수한다. 다른 이의 지식과 관점을 즐기면서 아무런 댓가도 제재도 없다니. 이처럼 신나고 대단한 자유를 사람들은 왜 잊고사는걸까. 지적 생산이 가능한 존재가 있는 세계 어디에서든 글모음으로 불릴만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고유의 개성과 존재감.

 

단 한권이 만들어지기위해 수많은 가축을 도살해야했던 과거의 천연가죽책부터, 구텐베르크 성서가 인쇄되기 시작한 인큐내블러 시대, 현대의 가볍고 깔끔한 문고본에 이르기까지 책의 변천사는 시대와 맞닿아 있다. 책은 어떤 형태이든 그 한권 한권이 특별한 존재다. 때로는 음성과 함께 엮여야만 비로소 '책' 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지금처럼 묵묵히 눈으로만 글자를 접하는 묵독 개념은 12세기 부터 시작되었다. 혀로 글자를 굴리지 않음으로써, 각자에게는 조용히 사색에 빠질 시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원래도 독서는 은밀한 행위였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을 지니게 되었다.

  

  

도서관에 앉아 꾹 다문 입매로 팔랑팔랑 책장을 넘겨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서가에 가득 들어찬 책과, 그 책에 푹빠져 섹시한 눈동자를 하고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나 역시 그렇다. 몰아의 시간에 빠져들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은 채 온전히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시간. 그 소중하고 고집스러운 시간은 왜 그리도 짧은지 책을 뽑아드는 순간부터 마음이 급하다. 집어 들었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그 다감한 온기. 적당히 알맞추 묵직한 무게. 단단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허리. 측면에서 풍겨나는 퀘퀘한 잉크와 먼지의 냄새. 그리고 미지의 세계.

 

이렇듯 열심히 책을 골라놓고, 눈앞의 활자만 급하게 주워담는 기계적 속독이란 책에 대한 모욕과 다름없다. 훑어내린 독서와 토하고 다시 곱씹으며 되새김질한 독서는, 그 시간의 밀도 면에서 이미 압도적인 차이를 지닌다. 그걸 안 뒤론 한권을 덮을 때마다 내용의 걸죽함과 뻑뻑한 정도를 따지게 된다. 요컨대 '탐식' 에서 '미식' 으로 가는 과정이다. 항상 겸손한 자세를 잃지않도록 스스로의 위치를 일깨워주는 책이여, 혼자이면서 또 여럿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여. 그래서 더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책을 읽는 시간. 나를 읽는 시간. 책을 읽는 여자. 자아를 발견하는 나. 언제까지나 그런 사람이고 싶은 나.

  

Every reader exists to ensure for a certain book a modest immortality.

Reading is, in this sense, a ritual of rebirth. - Alberto Mang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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