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나는 결혼비용은 이상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로 기억한다. 결혼식을 일생 최대의 쇼핑으로 묘사하고, 수많은 선택의 고충을 컨베이어식 공장개념에 빗대어 서술한 내용이었다. 읽을 때에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에 필적할만큼 유쾌다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디까지나 내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난 상태여서 즐거운 것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은 죽어도 안본다고 금을 그었더니, 부모님께서 결혼식 때 한푼도 못보태준다 선언하셨다. '혼자 벌어가지요, 뭐' 라고 큰소리를 떵떵 쳤다. 직장 잡은 이후 3년 내에 1억을 모으고, 5년 내에 1억 5천으로 불릴 셈이었다. 아, 어린 날의 단꿈이여!



내 딴에는 아주 진지했기 때문에 이렇게 모아서 결혼할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물었다. 주위 사람들이 대폭소했다. 일단 압도적으로 '왜 여자가 결혼비용을 벌써부터 걱정하냐' 묻더라. 지금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은 결혼비용 자체를 염두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나태형부터 남자가 해와야 한다는 망상형에 이르기까지, 자립형을 찾아보기 힘들더라. 나이 때문인가 싶어 다이아 미스로 잘 나아가는 언니들에게 물었더니, 이 쪽은 아예 해탈 수준이다. 이 나이에 믿을건 돈 뿐인데 왜 굳이 결혼을 해야하느냔다. 완벽하게 올인할 남자가 없는 이상 혼자 늙겠단다. 



서울 시내 소형 아파트 전세가가 최소 2억이다. 입지가 좋은 곳은 3억까지 올라가는데, 그걸 사회 초년생이 어떻게 감당하나. 특히 남자 측이 집을 준비하는게 통상적인 사회분위기로 굳어진 우리나라의 경우, 부담은 편중된다. '아들 셋 장가보내고 늘그막에 빈털터리' 라는 이야기는 얼마간 진실을 반영했다. 그렇다고 서로간 죽자살자 결혼 비용을 모으는가 살펴보면 그것도 아니다. 이 와중에 여자들은 '정규직은 기본, 집이나 차는 옵션' 이라고 외치니 서로 골만 점점 더 깊어질 수 밖에. 결혼이 사회적 체면과 일맥상통한다고 믿는 이상, 남는 건 '인생 뭐있나' 애써 합리화하는 노총각, 노처녀들 뿐이다.



당연하게도 충분한 경제력을 가진 집들은 고민할 이유가 없다. 인도에 유학갔다가 IT사업가와 가정을 꾸리게된 지인은 리조트가 있는 섬을 통째로 빌려서 일주일간 연회를 열었다. 시아버지로부터 잠실의 신혼집을 선물받은 후 리모델링 비용으로 2억을 들여 시집 간 언니도 있었다. 비용에 구애받지않는 결혼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아무도 드레스 밑섶에 깔렸을 돈을 신경쓰지 않는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일 땐 나도 분명 그런 결혼을 꿈꾸고 바랐더랬다. 다만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입장이 되니 몇 억씩 깨지는 결혼은 엄두가 안난다. 설령 남편이 자청한대도, 그렇게 부담시켜 버리면 미안해서 맘 편히 살겠나.



그래서 나름대로 결혼비용 다이어트를 궁리해 뒀다. 법조인을 꿈꾸던 시점에는 무조건 연수원에서 결혼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층고가 높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닌 성당 예식이 맘에 들어, 천주교를 믿어볼까 고민한 적도 있다. 평생 얼굴보기도 힘든 먼 친척을 부르는게 아니라, 든든한 지인들만 초대해 하우스 웨딩을 열자는 꿈도 있었다. 드레스는 디자인 하는 친구에게 맡기고, 예물 반지는 금속공예과 친구에게 맡기고, 사회는 아나운서 준비 중인 친구에게, 음악은 기악과 친구들에게, 중간에 코믹 댄스타임도 한번 가지고, 조리과 친구들을 통해 요리를 준비하고, 나는 사람들께 돌릴 답례품으로 열심히 두텁떡을 빚는다는, 수고롭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그런 결혼식 말이다. 



해외 결혼식도 고려해봤다. 직계가족들만 데리고 해외여행 겸 원정 결혼식을 가는거다. 규모를 축소해서 양가 합쳐 3000 만원 정도면 기분좋게 다녀올 수 있을것 같은데 어르신들이 너무 불편해 하실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한 가지 이기적인 이야기를 더붙이자면, 나는 북적이고 성대한 결혼식은 질색이다. 평소 마당발로 손꼽히는 분들일수록 '그동안 식장에 뿌린 돈이 얼만데' 라고 하시며 작은 예식을 강력히 거부하실 터. 그럴 경우 부모님께 기천만원 용돈 드리고라도 조용히 치르고 싶다. 비용을 부모님께 기대니까 자기 주장을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게 아니겠나.



향후에 내게 결혼할 사람이 생긴다면, 밥숟가락 하나에 월세로 시작하자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살면서 넓혀가자고 너랑 가정을 꾸리는게 우선이라고, 징징 보채는 사람이길 바란다. 결혼식이나 비용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은 나보다 '체면' '돈'이 중요한것 같아 싫다. 그렇게 결혼해봤자 밑지는 기분만 들테고, 살면서도 트러블이 많을게 뻔하다. 셋방에서 시작하는게 요즘 트렌드는 아니겠지만, 서로의 체온만으로 시작하면, 그 시절을 이겨내는만큼 강력한 연대의식을 쌓게 된다고 믿는다. (아차, 그럼 사랑이 아니라 동료애가 싹트나) 무튼 가난한 결혼을 하자는게 아니고, 결혼이 가난에 구애받으면 안된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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