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왜 그랬어요

 

두달 전부터 호감을 가지고 만난 사람이 있었다. 첫만남이 아직도 기억난다. 약속 시간보다 더 늦게 도착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연락이 닿지않아 가게로 구르듯이 뛰어들어 갔더니, 단정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커다란 야외 테이블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데다가,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게 맘에 들었다. 계속 보게될지 아닐지 잘 몰랐는데,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번호를 몰랐던 채로 헤어졌지만 큰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물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재밌게도 우리는 각자가 어디에 살고, 어디 학교를 나왔고, 집안은 어떻고, 부모님은 안녕하신가 등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았다. 선도 소개팅도 아닌 상황인데,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걸 굳이 물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보 없이도 친구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려지는게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서른 중반의 멀쩡한 분이 왜 아직 미혼이냐고 농담조로 물었더니, 상견례도 해봤지만 시기와 상황이 엉켜 어쩔 수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업하는 사람이라 일정이 뭔가 바빴고, 그래서 두번째로 만나기까진 무려 한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면서는 우동 한그릇을 먹고, 당구 한 게임을 치고, 커피를 마셨다. 데이트 같기도 하고, 데이트 같지 않기도 했다. 시시한 수다를 떨면서 꼬박 반나절이나 놀아주는걸 보면 분명 호감은 있는것 같은데, 연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길래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지금 사귀면 결혼까지 고려해야하니 조금 더 신중하게 만나봤으면 좋겠단다. 나이가 있으니 그럴 법도 하구나 싶어 납득했다.

 

 

아니 사실은, 납득한 '척' 만 했을 뿐이다. 평소 연애는 타이밍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지나간 버스를 세우기 전에, 호감이 생기는 즉시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성격이다. 때문에 그의 신중함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애인 사이에도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꼭 붙잡고 싶은 사람이 눈앞에 서있다면, 꼼꼼히 재보는것 보다는 일단 저질러 놓고 차차 확인해나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기다리는 시간이 한량없이 길게 느껴졌지만, 상대방의 뜻을 존중해 꾹 참고 기다렸다. 연애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늘 손해라고 뇌까리며. 그런데 알고보니, 그의 망설임에 타당한 이유가 존재했다. 어느날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이의 번호를 몰랐는데, 이상하기도 하지. 직감적으로 그 사람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은 침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왔다. 누구씨 맞으신가요? 네. 전데요. 혹시 ㅁ 씨 아시죠? 누구요? ㅁ 씨요. 아는데, 실례지만 누구시죠? 저, 그 사람 와이픈데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벌떡 일어나버렸다. 어째서 내 연애는 뭐 이렇게 진부한 이야기로 흘러가는가.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랬던가 싶지만, 당시에는 순간적으로 몹시 혼란스러워서, 저쪽이 묻는대로 족족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일이 현실인가. 와이프 분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통화하는 간간이 실소가 터졌다. 오죽했으면 상대방이 기분나쁘니 웃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어디서부터 어떤 단추를 잘못 끼운건지, 정신이 아득해져 버렸다. 호감을 가지고 좋아서 다가간 사람이, 결혼 15년차에 두 아이의 아빠, 누군가의 하나뿐인 남편이라니. 

 

 

생각할 일이 많아지면 일단 걷는다. 데이트 하려고 신고나온 높은 힐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발을 재게 놀리는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혜화역에서 집까지 걸어와 버렸다. 어쩌면, 전화번호를 이런 식으로 알게될 줄이야! 보통은 신상명세부터 교환하는게 보통인데 난 왜 이상하다는 의심을 못했을까? 언니들이 해주던 조언이 이제야 뭔지 알겠다. 남자가 서른다섯 넘도록 장가 안가고 있으면, 돌싱이거나 병신이거나 고자일 확률이 높댔지. 웃어넘겼는데, 정말로, 진짜였구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쩌면 이렇게 사람을 깜빡 속여 넘길수가 있담? 슬그머니 부아도 치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있댔으면서. 언젠가 같이 캠핑 가자고 했으면서. 남자친구 많은 여자는 싫고, 바람피는건 절대로 용서 못한댔으면서. 한 사람한테만 충실하고 싶댔으면서. 

 

 

나와 나눈 이야기 중 얼마만큼이 진실이었을까. 나를 보면서 비웃었을까. 은근슬쩍 거짓을 섞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자신의 소속을 까맣게 잊은것처럼 행동하다니. 비슷한 나이대 남자들이 으레 겪는 바람이었을까? 나는 그 사람에게 뭐지? 나누었던 이야기의 진위를 알 수 없으니, 당최 짐작이 가질 않는다. 때마침 아는 오라버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진행 중인 연애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이 순간만큼은 입이 가벼워졌다. 뭐라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 힘이 빠질 것 같았고, 그러면 집에 들어가기 싫을 것 같았고, 부모님께 걱정을 끼칠것 같았다. 손해를 보더라도 반듯하고 완고하게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최소한 칼부림이 날테니까 그런 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를 붙들고 내 상황을 고했더니, 평소 착하게 살아서 어딘가의 이 더 깊이 빠져들기 전에 막아준거라며 다독여 준다. 그럴 수도 있겠군. 남자들 대표로 사과해야 할 일 같다고 토닥토닥 해주신 오라버니도 계시다. 혼인빙자간음죄에 속하는 내용 아니냐며 화를 내주시길래, 간음 사실이 없어서 성립도 안될뿐더러 간통죄와 마찬가지로 폐지된 법안임을 알려드렸다. 연애를 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니 이게 뭐람. 와이프 분이야 당연히 놀라셨을테고, 화가 나셨을 테고, 이해는 하지만. 나의 노력과 진심은 어떻게 되는거야? 아무것도 모른채로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고 열심히 발버둥친 나는 뭐야? 나름 귀하게 자랐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데, 막 대해도 되는 사람 아닌데. 바깥을 향하던 분노는 마침내 자학으로 돌아섰다. 생각보다 크게 호들갑 떨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비슷한 일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다.

 

 

 

지인의 와이프 분이 나를 내연녀로 오해한 상황이었는데, 그때 나는 마음껏 분노했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나는 진짜로 그 남자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 남자에게는 진짜 아내가 있었다. 소설의 한 문장도 아니건만, 희극 그 자체다. 주위 사람들이 바보처럼 사람 너무 믿지 말라고 충고해줄 때, 속아주는 사람도 한명쯤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며 뻗댔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이야. 말이야 바로 해야지. 세상에 꼬실 여자는 차고 넘친다. 돈만 넉넉하다면, 얼굴 예쁘고 몸매 끝내주고 이야기까지 사근사근 잘 들어주는 언니들을 얼마든지 무한정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몸이 목적이라면 그쪽이 훨씬 더 빨랐을텐데. 10시면 자리에서 일어나고, 술도 자주 안 마시고, 나이도 그닥 어리지 않으며, 성격까지 꼬장꼬장한 나를, 뭐하러 꼬셨을까.

 

 

정말로 만약에, 어쩔 수 없이 내게 마음이 생겨버린 플라토닉 러브의 경우라 해도 열받기는 마찬가지다. 설령 그랬더래도 호감만 가진채로 끝냈어야지. 왜 한 발 넘어와.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으면 내 쪽에서 명확히 선을 긋고 마음 줄 일도 없었을텐데, 화는 화대로 나고 풀 곳은 없고, 독만 바짝 올랐다. 게다가 유부남이라고 먼저 밝히지 않는 '묵인의 행위' 보다, 적극적으로 거짓을 말해 '상대방을 기망하는 행위' 의 죄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가.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해 징징대고 있었더니, 자초지종을 들으신 지인분께서 '임마, 당연하지. 처음부터 유부남이라 말하고 바람피는 사람이 어딨어. 다 해보고 여자가 빠져들면 그때 유부남이라고 밝히는 거지. 그러면 말마따나 인생 되는거다.' 라고 일러주셨다. 내 자신도 참 바보같고, 그 남자도 참 밉다. 남들이 살면서 한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을 여러번 겪는거 보면, 내 쪽이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연애의 허용 범위가 넓고,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마인드고, 인간을 많이 좋아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먹어 보는 성격인데, 이제보니까 찍어먹어도 분간을 영 못하는것 같아 걱정이다. 어느 정도 신상이 공개된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을만큼 내 쪽은 떳떳하다. 이후에 변호사가 찾아와서 증언을 요구하더라도, 지금과 똑같은 사실을 '적시' 할 수 있을만큼. 그러나, 그렇다해도, 달라지는게 무에 있으랴. 분노는 조용한 기세로 쉴새없이 증식하고 있다. 이렇게 허무하고 억울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사심없이 순수하게 좋아했었다는 뜻이다. 오늘에서야 다시금 와이프 분께 전화를 걸어, 저간의 사정은 이렇고, 가정을 깰 의도는 전혀 없으며, 유감이라고 말씀드렸다. 눈치가 없어서 죄송해요.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과를 하면서, 몰랐다는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변명임을 깨달았다. 몰랐으니까, 몰랐기 때문에, 몰랐던 채라서 나는 그 사람을 참 많이 좋아했었다. 많은 부부가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지만, 평생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살아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존경받을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이, 그동안 잘 가꿔온 가정을 깨지않고, 부디 좋은 아빠와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물론 그런다고 내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 사라지는건 아니지만. 와이프분의 상심이 더 크실테니 내색하기도 어렵다. 나야 그 분 입장이 아니되서 충격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굉장히 이성적으로 대화해주셔서 서로간 크게 감정 상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단 푹 자자. 깨고 나면 다시 걸어나갈 힘이 생기겠지. 이제 서른 넘은 남자한테는 등본 떼오라고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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