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이 다 그렇지 뭐


1.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들어온 회사는, 생각만큼 만만하지도 달달하지도 않았다. 딱 한달여 즈음은 상당히 행복했다. 곧 받게될 첫 월급이 두근거렸고, 태깅을 하는 출입카드가 신기하였으며,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한명의 사회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뿌듯했다. 다른 사람들 다 하는 그대로, 나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 평안함.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 그러나 두달 째부터는 두근거림이 조금 시들해졌다. 뭔가를 빨리빨리 배워야 하겠는데, 대학 때처럼 친절히 알려주거나 떠먹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2. 흔히들 회사가 사원을 뽑은 직후 1년은 버리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조직문화와 일을 배우게 하는 시간들이라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된다는 것.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다. 그깟 조직문화와 업무가 힘들고 복잡해봤자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1년이 지나는 기간 동안, 나는 회사가 '내 편' 이 아닌 '회사 편'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전적으로 수익을 쫓는 사념체임을 이해하게 됐다. 사원을 소모품처럼 써버린다는 것도,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것도 모두 진짜였다. 



3. 그렇다고 급여가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입사할 당시 나는 연봉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계약한 연봉 나누기 열두달 하면 내가 받는 월급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통장에 꽂히는 돈은 황당한 수준이었다. 첫째로, 이토록 헌신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며 국가에 이바지 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놀랐다. 둘째로, 사회생활 시작하기 전 알바로 치부하던 수준의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놀랐다. 일은 어디서 하든 똑같이 짜증나고 힘들다. 그러니 아직 취직하지 않은 이들이여, 먹고 사는데에 지장 없다면 몇개월 더 준비해서 대기업 가라.




4. 왜 그런 소리를 하냐면 소위, 통장에 꽂히는 돈의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집세나 관리비를 내는 것이 아니므로 가진 돈으로 근근이 소비도 하고 저축도 하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즐겁게 노는 데에도 쓴다. 하지만 이 정도 금액으로 스스로의 평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친구들은 '적게 벌지만 적게 쓰고 적당히 모으면, 많이 벌어 많이 쓰고 덜 모으는 사람이랑 비슷하지 않은가?' 싶을텐데 아니다. 매년 천만원씩 3년 저축해봤자 6000씩 버는 친구들이 작심하고 일년 모으는 돈을 못 이긴다.



5. 그런 점에서 연봉이란 녀석이 아주 무서운 놈인데, '소비 경험' 을 학습시킴으로서 근로자가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착실하게 일할 수 있도록 조련한다. 반복되는 야근과 잔업, 특근을 경험하며 이 따위 직장 때려치운다고 싫은소리를 내뱉던 이들조차 월급날이 되면 조용히 자신을 달랜다. 내가 이 맛에 대기업 다니고, 내가 이 맛에 개같이 구르지. 하고. 어찌보면 돈이 사람을 휘두르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회사가 비교적 일이 편함에도 불구하고, 이직률이 높은 것은 역시 보수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라고 인건비를 삭감하니까.



6.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다른 회사에서 팀장직인 지인을 만났다. 회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며 툴툴 거렸더니, 일단 3년 정도 다녀보고 판단하랬다. 한 직장을 3년도 다녀보지 않고 왈가왈부하기는 이르고, 향후 이직을 한대도 다음 직장에서 근속 연수를 눈여겨보니 성급히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회사가 망할 때 망하더라도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내가 있는 분야에 '여자' 가 종사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커리어를 잘 관리하면 주요 그룹의 얼굴마담이 될 수 있을거란다.



7. 하여 나는 모든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을, 이 직무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 늘 고민을 거듭한다. 대학 때 배웠던 전공과 연계점이 있는 진로라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변호사와 힘을 합쳐야 할 때면 맥이 풀린다. 나도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세간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다. 내게는 직함이 없고, 따라서 설득적 권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판 가보면 변호사는 그저 의뢰인 이야기를 판사와 상대측에게 조리있게 전달하는 입장일 뿐인데, 바깥에 나오면 '님' 으로 대접받고 자릿수가 다른 월급을 받는다.



8.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변호사를 우대하는 것을 보며, 왜 그런 인식이 생기는 걸까 고민한다. 그이의 인생 중 몇년을 법학에 오롯이 바쳤기 때문에? 일정 수준으로 법률을 이해했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한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로스쿨로 변호사 타이틀을 비교적 쉽게 살 수 있게 되어버린 요즘인데, 나도 똑같이 돈을 들여 직함을 갖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3년에 1억을 투자하면 나머지 30년을 사는동안 100억 정도를 벌 수 있을까? 최상위권 로스쿨에 갈만큼의 머리를 가진 것이 아니라 더욱 고민스럽다.



9. 얼마전 면접을 보게 됐다. 면접자가 아니라 면접관 신분으로, 계약직 이들의 고용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일년 차 사회초년생인 내게 사람보는 눈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결국 나와 일할 사람들이니 내가 면접을 본다. 늘 면접자의 입장에 있다가, 면접관 입장이 되어보니 관점이 확 바뀐다. 취업 전에 이런 시각을 가졌다면, 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을텐데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어쩔 수 없다. 일이야 누가 하더라도 비슷한 것이니, 결국 성격적으로 잘 맞을것 같은, 끈기있고 성실한 인간을 고르게 된다. 투자한만큼 거둘 수 있는 녀석.



10. 면접자 수가 많아질수록 지원서만 봐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됐다. 파견업체를 통해 아르바이트로 들어오시는 분들은 놀랍다 못해 충격적인 수준의 자기소개서를 써낸다. 200자가 채 못되는 오탈자 투성이의 줄글. 내용도 하나같이 화목한 성장과정과 원만한 성격인데, 실무자에게 필요한건 '네가 바로 우리 회사 업무에 적응할 수 있는지' '돈 주는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가 중요한 부분이다. 이전 '경력' 과 '직무에 대한 관심도, 적응력' 이 관건이니 면접 준비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신경써주시길. 충성도야 나중에 심어지는 부분이다.



11. 한편 구직 전에는 사소하게 여겼던 '나이' 가 중대한 허들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아주 적으면 책임감이 없고, 아주 많으면 조건이 까다로와 금방 일을 그만둔다. 한번은 뽑은지 3일도 안되어 퇴사하시는 분을 보았다. 흔치 않은 일이겠거니 싶었는데, 이후로도 여러 명이 그러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얼굴을 보고 사정 설명을 하기는 커녕, 문자로 '그만두겠습니다' 보내거나, 출근을 하지 않는 것으로 퇴사의 의도를 완곡하게 전달한다. 이 사람들은 알바라서 이렇게 자유로운 걸까. 나도 같은 입장이면 회사가 쉽고 만만할까?



12. 이미 여러 사람을 뽑아본 지인에게 의논을 했다니, 어쩔 수 없으며 계약직들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와 마음이 무척 아팠다. 계약직과 정규직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다고 색안경을 끼는가 싶으면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할 때마다 점점 '책임감 없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내 안에 특수한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그걸 뒤집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슬펐다. 그분들도 정규직으로 들어왔더라면, 남다른 애사심을 보여주었을까. 사람의 차이인 것일까, 자리가 만드는 한계인 것일까.




13. 물론 모든 계약직 사원이 그런 것은 아니다. 정직원으로 넘어오는 경우를 보기도 했는데 그런 분들은  역시 누가봐도 인정할만한 꼼꼼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계시더라. 아마 우리 회사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올바른 인간' 의 틀을 갖추고 성실히 일하였을 것이다. 다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에서 계약직을 차별하는 일이 잦다. 사소하게는 인사가 어색하고, 점심을 따로 먹고, 모임이나 회식도 따로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은 우리와 달라' 라는 금을 긋는다. 남을 깎아내리고 차별화함으로써 자신을, 자신의 위치를, 보호한다.




14. 그렇게 일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고 뭐든 적당주의로 새로이 '직장에서의 나태함' 을 배웠다. 새로 배운다는 행위는 좀처럼 귀찮은 일이고, 연차가 쌓일수록 귀찮고 어려운 일은 아래로 떠넘길 수 있게되니까, 편하고 눈에 보이는 공로만 세우려 든다.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스스로 바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있는데 마음이나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저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자, 하며 눈앞에 닥친 일들만 풀어나가기에 급급하다. 나는 과연 좀 더 성장할 수 있을까?



15. 일찌감치 대기업 들어간 친구들은 알뜰살뜰 오천만원씩 모았는데, 나는 천만원도 채 못 모았다. 다만 회사가 사람 잡는다고 욕할 일 없고, 비교적 편하게 대해주는 상급자 아래서 느긋한 직장생활을 지속해나가는 중이다.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돈 많이 버는 친구들은 항상 부럽다. 부모님은 여즉 '공무원 늦지 않았다' 라고 하시는데, 대학 때 나보다 성적 낮던 친구들은 오랫동안 공부한 끝에 대부분 '로스쿨' 생으로 살고있다. 10년 뒤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많은 격차가 벌어져 있을까. 나는 이렇게 안주해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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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회사사람들과 어울리는게 제일 어렵습니다 ㅎㅎ 저도 회식은 물론 점심 같이 먹는것도 꺼리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게 회사일에 뭐가 중요한가 싶습니다
      일하는 곳인데요 그리고 적당주의 응원합니다...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는게 맞는것인지 항상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일반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기사를 보면 점심시간 때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는 분들도 계시고, 영어학원 등록해서 잠깐잠깐 공부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희는 굳이 다같이 먹어야 한다는 주의더라구요. 특히 본부장님도 식사를 같이 안하는 주의신데 '나는 본부장이고, 내가 너희랑 식사를 같이하면 너희가 불편하니까' 라는 이유를 대면서 안 드세요. 하지만 저한테 너는 (평) 사원이니까 그래도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려야 하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실 땐 수긍이 가기도 하고 반발심이 들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죠.

      사실 그렇게 점심을 먹지 않아도 회사사람들과 같이 수상스키를 타러 가거나, 취미생활 하러 주말에 가끔 모이거든요. 근데 눈에 보이는게 아무래도 점심시간이다보니, 점심 때 뭉쳐있지 않으면 안 친하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일=열정=꿈 이 되면 참 좋겠지만, 그게 아니고 일=업무 라면 구태여 나의 모든 진기를 쏟아부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하다가 재미를 느껴 업무=열정=승진 으로 다가가면 좋겠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그저 회사와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업무적 책임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 직장인들의 마음을 정말 절실하고 애뜻해게 한장의 그림에 담아내셨네요
      멋져요^^

    • 아실것 같지만 이것은 제가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 약치기라고 따로 그리시는 분이 있습니다. 직장인 분들에게 공감을 아주 많이 받으시는 ㅋㅋㅋ

    • 이또한 지나가리라 직장에서 힘들때 가족을 생각하면 사직서를 심장에 각인합니다
      공감이 많이 갑니다. 가장(남, 녀)이라는 이름의 모든 분들 힘내세요 Edward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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