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chmade 943BK 오스본 디자인


어릴 때부터 툭하면 맞고 다녀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왜 강냉이를 털어주고 오지않았냐며 엉덩이를 두들겨주셨지만, 어머니는 성격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울지않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그랬다. 맞는다는건 이렇게 아픈 일인데, 상대방을 때리면 그 녀석도 아플게 아닌가. 결국 누가 휘두르든 폭력은 싫었고,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행위라면 특히 별로라 여겼다. 이런 정도니 전쟁이나 무기는 그야말로 '혐오' 의 대상이었고, 밀리터리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연찮게도.



남자친구가 날붙이에 대해 지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서슬퍼런 것이라면 참 대놓고 좋아했는데, 내 머릿속에는 늘 남편 혹은 애인이 휘두른 부엌칼에 맞아 숨지는 여자가 떠올랐다. 욱하는 기질이라도 있었다간 순식간에 '윽' 하고 당할판이니 조심히 사귀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중에서야 도검을 소지한 사람들은 오히려 무기의 무서움을 잘 알고있는만큼 안전에 철저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남자친구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내게 멋진  '칼' 들을 설명했다. 음식점에 칼을 우르르 쏟아놓았더니 셰프가 와서 구경한 적도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꾸만 보고, 접하고, 만져보다보니 조금씩 날붙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남자친구도 그런 나의 반응에 부응해 생일 때에는 자신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칼 한자루를 넘겨주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바로 벤치메이드 943BK 모델이다. 외관을 보자면 온통 새까만 색으로 뒤덮여 있어 '무기' 로서의 묵직함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녀석에 가깝다. 예전엔 초록색 손잡이가 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까만색이 더 좋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기분좋은 묵직함이 전해지고, 여자인 내가 쥐기에도 좋은 크기를 지녔다.



칼날과 손잡이를 잇는 부위에 금속성의 나사를 살짝 당기면 잠김 되어있던 칼날을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데, 여러번 실험해보니 살짝 반동을 주어 부메랑 던지듯이 '촥' 하고 펴는게 멋있었다. 칼 등에는 톱니같은 부분이 있는데, 반들반들 길이 든 것을 물려받아 편히 소지해도 옷감 상할 일이 없다. 칼날의 경우 S30V 라는 매우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다는데, 남자친구의 설명을 일백프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절한 경도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고 너무 무르면 장식용이 되기 쉽다) 와 절삭력, 녹 방지를 두루 갖춘 강재라고 이해했다.



그냥 날도 잘들지만 톱날같은 부분을 이용하면 까다로운 (질긴) 부분도 쉽게 토막낼 수 있다. 뭣보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유려함이 돋보이는 라인이다. 다른 칼들은 손잡이 부분이 길고 굵기 때문에, 투박하거나 강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헌데 이 녀석은 유독 우아하다. 위아래로 길이가 기름하여 날렵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날과 손잡이가 1:1의 비율을 이룬다. Warren Osborne 의 디자인을 만나 겉은 범상하지만 속은 매우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이 탄생했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간직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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