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It , 2017)


청춘의 뜨거운 여름을 식혀준 것은 다름아닌 스티븐 킹의 소설과 영화들이었다. 케이블 TV에서 종종 해주던 <옥수수 밭의 아이들> 은 사람 키높이 만큼 자란 옥수수와 한적함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울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오죽했으면 <인터스텔라> 를 볼 때도 이 영화가 떠올랐으니 말이지. 이제는 다른 역할들로 점점 기억을 지우고 있는 케시 베이츠지만 <미져리> 때의 집착녀 연기는 빼놓을 수 없다. 문짝 사이에서 눈을 희번덕거리는 아빠가 등장하는 <샤이닝> 은 어떻고. 영상과 음악, 스토리가 매끄럽게 연결된 작품들이었다.


아니 근데 일단 하수구 안에 사람이 이러고 있으면 종이배고 뭐고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칠것 같은데.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영화화된 작품들, 이를테면 <1408> 이나 <미스트> 는 마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망한작품처럼 실망을 안겼다. 자라나는 내게 스티븐 킹은 과거에 묻어두어야할 영웅이 되었다. 특히 그 시절엔 <그린마일> 이나 <돌로레스 클레이븐>,<쇼생크 탈출> 처럼 진지한 내용의 작품들이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몰랐으므로. 여하튼간 그의 공포/호러 소설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잇> 이었더랬다. 주로 광대 캐릭터로 등장하는 '정체 모를 것' 에 관한 이야기로, 평범한 문장 하나하나가 손발 오그라붙게 무서웠었다.


광대는 빌 스카스가드가 연기했다고 한다. 사실 천천히 생각해보면 그리 무섭지 않긴 한데 -_-;;


세월이 흘러 살다보니 <잇> 이 영상화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원작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시점이지만, 그때의 공포심을 제대로 살릴 수 없을까봐 지레 걱정했는데, 기억 했던 것보다 새로운 느낌의 영화였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시리즈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스티븐 킹은 사실 비관적이기 보단 긍정적/희망적인 편에 서 있는 작가다. 공포를 보여주지만, 그 공포를 넘어서 새롭게 행복을 찾는 방법, 성장 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불행 속에서 낙담하기보다 한 발 넘어서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공포힐링 장르 정도로 표현 해야할까.


중반부부터 빌이 아주 용감한 기사로 활약한다. 겁도 없이 남의 나와바리(?) 에 깽판을 놓다니 ㅋㅋ


이번 작품 <IT>은 세련된 느낌으로 다듬어낸 <스탠 바이 미> 나 다름없다. 잔혹하고 기괴한 환영 (이토 쥰지의 서양화 라고 해두자) 으로 등장하는 그것들은 끔찍하지만, 바로 그 다음 장면에는 긴장을 해소시키는 위트가 등장한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활약도 대단하다. 미묘한 시선 처리와 떨림을 능숙하게 조절했던 소피아 릴리스. 과장된 오도방정으로 또래들만의 느낌을 잘 살려준 핀 울프하드. 뉴키즈 온더 블락의 노래를 듣는 독서광 제레미 테일러. 정말로 말더듬는 습관이 있는가 싶었던 제이든 리버허. 의외의 주연 빌 스카스가드.


이 나이대의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는 에디 아닌가. 엄마가 하지말라면 안 하고, 보호받는 것에 안온함을 느끼는.


해리포터 세대인 내게, 각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으로 보이는 '그것' 의 설정은 단박에 보가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겁에 질려 꼼작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한 걸음씩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아이들의 연대와 용기가 기특하게 느껴진다. 광대가 리치에게 빌만 잡아둘테니, 너희들 모두 떠나라고 말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었다. 많은 것이 겹쳐보였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순간이 닥친다. 그 때에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스스로의 안위를 챙길지, 어렵더라도 함께 헤쳐나갈지 말이다. 나였어도 분명 쉬운 길을 택하려고 등을 돌렸을텐데.


마이크에게서는 흑형의 유머러스함을 1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총에서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보였다만 (..)


도망치기보다 집단구타로 대항하는 모습은 웃기고,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이것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공포가 아니다. 누구에게든 가해질 수 있는 위협 - 성폭행, 이유없는 괴롭힘, 인종 차별, 죄책감, 맹목적인 애정 - 에 대처하는 이야기이고, 성장에 관한 영화다. 피범벅된 베벌리의 욕실을 합심하여 닦아주는 것처럼, 서로 힘든 일을 털어놓고 돕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말더듬이 '빌' 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멋져보인다. 신념대로 행동하는 당당한 인간이라서. 다른 영화의 대사지만 '우리는, 뭉치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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