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 】 송파구 신천동


할아버지 따라 서울의 여러 호텔을 전전해본 입장에서 롯데호텔이란 클래식의 결정체였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서비스의 품질이 늘 일관적이었고 손님이 왕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롯데가 새롭게 런칭한 시그니엘 호텔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상을 가진 것은 당연한 수순. 나중에 방문해서 무너질 위험을 극대화시키기 보다는, 일찌감치 방문하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궁금했던 것은 81층의 레스토랑 <스테이> 였는데, 미슐랭 스타 출신의 셰프가 꾸려낸 곳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극대화되었다.



피에르 가니에르가 롯데호텔에 상주하지 않듯, 야닉 알레노 역시 스테이에 있지 않겠지. 어쨌든 오리지널 레서피는 그의 것이고, 경험한 적 없으니 기대를 품었다. 81층 까지는 굉장히 빠르게 도달했고, 다른 식당을 지나쳐야 스테이에 들어갈 수 있어 번거로웠다. 출입문이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점은 신기하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친절함을 두른 직원이 창가자리를 안내했는데, 근사한 전망과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가 압도적이었다. 스테이 초이스로 2인분을 주문하고, 디저트는 하나만 선택했다.



메뉴를 전부 다 맛보려고 하나씩 다른 것을 선택했다, 아뮤즈부쉬는 동일.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서빙해주었는데, 속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놓고, 빨리 가져다줄테니까 빨리 먹고 일어나, 라는 무언의 압박 같아서다. 구태여 호텔에 오는 것은 분위기와 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큰 법인데, 느긋함이 생명이어야할 곳에서 채근하는 인상을 풍기다니 아쉽다. 시간의 경과가 조금 신경쓰였고, 셋 다 뚜렷한 인상을 남기진 않았다. 오히려 빵에 발라먹는 버터와 햄 간 것이 아주 맛있었음.



남자친구는 줄콩과 딸기, 식용꽃이 어우러진 샐러드를 받아들었다. 보기엔 좋지만 식용 꽃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거부감이 들었고, 다채로운 맛을 줄콩과 딸기 두 가지로 커버한다는 것도 신경 쓰였다. 그보다는 내쪽이 주문한 완두콩 수프 쪽이 맛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날의 모든 코스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그릇이다. 싱그러운 색깔과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풋내음. 그럼에도 한 입 먹어보면 고소하고 씁쓰레한 뒷맛이 분명한 완두콩이라, 빙글빙글 웃으면서 수저질 할 수 밖에 없었다. 빵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



드디어 메인이다. 봄야채를 곁들인 로스트 치킨이 등장했는데, 기대만 못하다. 그냥 먹었으면 괜찮았다고 했을 것인데, 남자친구가 생닭 사다가 수비드해서 만들어준 룰라드랑 비슷한 식감이었다. 일반인의 조리와 전문가의 조리가 다를 바 없다면, 외식을 즐기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업장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가. 뿐만 아니라 '로스트' 의 특징에 방점을 찍어주는 껍질 그을림이 미미하였다. 크런치 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소스범벅의 밋밋한 껍질을 보면서 아쉬웠다. 그나마 컬리플라워 소스가 기운을 돋워주웠다.



하지만 파스타에서 다시 갸웃. 프레골라 사르다 파스타, 라는 이름에서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은, 이 파스타가 숏파스타 중에서도 가장 자그마한 부류라는 것. 마카로니의 3분의 1 크기로 거진 리조또에 필적한다. 이것들이 소스를 만나 등허리를 맞대고 뭉쳐있는데, 강원도에서 자주 접하게되는 옥수수범벅과 아주 비슷하다. 알갱이 식감이 이미 꼬들꼬들한데도 구태여 비슷한 식감의 자잘한 버섯을 더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다못해 살짝 튀겨 크런치한 식감을 더하는 식으로 변주를 더했으면 좋았을텐데, 전체적으로 밋밋한 인상.



나야 범상한 사람이라 미슐랭 스타 셰프의 심중을 이해하지 못하여 답답하고, 이건 칠만칠천원을 주고 먹을 식사 같지는 않을 뿐이고. 서버는 옆 테이블 VIP 에게 신경 쓰느라 우리가 안중에도 없고. 섭섭한 기분으로 디저트를 먹었다. 크로스티니 비슷한 녀석을 부수어 안의 노오란 푸딩 같은것과 섞어 먹으면 된다. 수란 느낌이 나서 신기했고 상큼한 마무리이긴 했는데, 차 한잔이 곁들여지지 않는 것은 마이너스. 내려놓고 캐쥬얼하지도, 각 잡고 격식있는 것도 아니어서 평하기도 어렵다. 일단 이 가격에 저는 여기 안 갈래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미지 맵

GUSTUS/★ 다른 글

댓글 4

    • 15만원 넘게 들여도 이 정도 수준이군요..
      접객이 그 모양이면 더 의미가 없구요.
      요샌 어떨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저 가격 들인다면 '설후야연'이 훨씬 나아보입니다.

    • 호텔에서 먹는 이유의 반절은 서비스니까, 접객은 중요합니다. 향후 나아지긴 하겠죠. 그렇다고 이돈의 두배가 되는 롯데호텔 가기도 좀 그렇고. 신라나 웨스틴 조선이 최종 정착지가 될듯합니다. 돈 버릴 때 버리더라도 가끔 가보긴 해야죠 ㅎㅎ 설후야연 먹어보고 싶습니다 ㅠㅠ

    • 프레골라는 이제 ssg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요. 그나저나 남자친구분이 수비드해서 치킨 룰라드까지 해주셨다니 부럽습니다ㅎㅎ

    • SSG에 이런 것이 들어와있다니.. 잇탤리 정도 가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네요. 오밀조밀하게 생기긴 했는데, 이 정도의 숏파스타는 접해본 적이 없어서 의아했습니다. 리조또가 있으니 굳이 필요할까 싶지만, 하나는 밀이고 하나는 쌀이니 다르긴 다르군요. 요리는 남자친구가 저보다 훨씬 잘 합니다. 저는 부엌에 보이는 재료를 닥치는대로 끌어모아 대충대충 만드는 식이고, 남자친구는 실버스푼을 참고해 정성껏 계획적으로 요리하는 스타일이에요. 망할 때도 있지만, 잘될 때는 왠만한 음식점보다 훨씬 좋습니다!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