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문 사거리 식당 】 서귀포시 표선면


서울에서만 이십몇년을 살다가 처음 제주에 갔을 적에, 버스 배차에 대해서는 요만큼의 염려도 하지 못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도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버스 정류장에 주저앉아 한시간 반을 보내고서야 알았다. 어떻게 하나. 나는 오늘 내로 꼭 이 곳을 들렀다가 서울에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다음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그러고서 시간표를 본 다음 또 걸을만하겠다 싶으면 이동했다. 점심 먹고 걸은지 세시간 쯤 되니 가시리에 도착했다. 고기국수와 삼겹살 일인분을 주문해 볼이 미어지도록 우겨넣었다.


고기국수 많이 생각났는데, 이번엔 별로였다. 고기냄새도 나고, 면도 불어터졌다. 시골스럽긴 하다.


이윽고 4년이 흘렀다. 직장이 생겼고, 운전도 배웠다. 제주도로 출장이 잡혔을 때, 제일 먼저 이곳의 토종돼지고기가 생각났고, 얼른 여사님 몫의 비행기 표를 끊었다. 모녀가 언제 이렇게 오붓해볼까. 제주지법에서 나오자마자 렌터카를 몰고 표선으로 달렸다. 바닷길을 따라 달리며 석양을 감상하려했지만 남동쪽으로 달리는 셈이니 해가 바다에 빠질리 만무하다. 한라산을 관통하는 코스를 잡았는데, 겨울 초입이라 해가 더 빠르게 진다. 차들도 드문드문 다니는 왕복 1차선의 캄캄한 길을, 상향등 켜가며 조심스레 운전했다.


껍다구만 벗겨먹고 싶은 것.


다행히 목적했던 <명문 사거리 식당> 은 문이 열려있었다. 괜찮을까, 걱정 반 기대 반 품으며 문을 밀었다. 조용한 바깥과 달리 지글거리는 고기내음과 연기로 식당 안이 온통 매캐하다. 얼른 들어오지 않는 사투리를 들어가며 토종돼지고기를 굽는다. 그리 두터운 살점도 아니고, 돼지털도 숭숭 나있다. 그런데 다 굽고 먹으면 저어하던 마음이 금세 돌아선다. 까생이의 껍질 부분은 고소하고, 과자처럼 와작와작 씹힌다. 잘 구워진 껍질의 매력이야 구태여 말해 무엇하리. 보통의 돼지고기들보다 한참 붉어보이는 속살 역시 촉촉하다.


햅쌀밥인 줄 알았다. 살아있네.


도착한 밥을 보면서는 한번 더 감탄한다. 서울에서 난다긴다 하는 식당들도 밥에서 항상 곤욕을 치르는 편인데, 이 집은 무심하게 내려놓는 공깃밥이 참으로 맛나다. 터지지 않은 알갱이, 고슬고슬하면서 적당한 윤기와 수분을 모두 간직한, 바람직한 밥알. 서울 <광화문국밥> 집에 가져다주고 싶을 정도였다. 한편, 고기국수는 기억 속의 한그릇보다는 실망스러웠는데, 실제로 맛이 변한건지 나의 마음 탓인지 잘 모르겠다. 국물은 여전히 찐득하여 돈코츠 라멘 못지않다만, 한번 삶아두었다가 다시 끓인 면이 푹 퍼져 별로다.


사정없이 뿌린 고춧가루와 깨는 식전에 미리 빼달라 말씀드리지 못한 내 탓.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몸국으로 수저를 옮겼다. 고기육수의 감칠맛에 바닷말 내음이 착착 감긴다. 비린내를 잡음과 동시에 오돌오돌한 식감과 맛까지 살리는 '모자반' 이라니. 본디 시래깃국을 좋아하는데도 자꾸만 몸국이 한수 위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해초답게 간간함까지 더해주니, 서울에 이런 해장국 없나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것. 음식이나 분위기나 투박하기 이를 데 없고, 외지인보다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관광지화가 덜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으며, 몸국과 돼지고기는 경험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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