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에 관하여


뭍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대한항공사를 이용하게 되었다. 6열 비행기나 3열 늘어난 비행기나 잔진동이나 소음은 매한가지지만, 발돋움 해야 선반을 내릴 수 있을만큼 높은 천장이 숨통을 틔워주어 좋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체크인을 일찍하면서 앞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좌석을 골랐던게 화근이었을까. 내게 편한 자리는 남에게도 편한 법인지라, 옆좌석과 뒷좌석에 어린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동승했다. 얼마나 어렸냐면, 혼자서 1인 좌석을 끊을 수 없는, 제대로 말도 배우지 못한 갓난쟁이들이었다.



조용했다면야 좋았겠지만, 그런게 아니니까 문제다. 바로 뒤에 애를 안으신 분이 있으니 좌석 눕히는 일은 포기해야했고, 꼿꼿하게 앉아 잠을 청해볼까 했더니 귀청이 따갑다. 악을 쓰고 몸을 한번씩 냅다 뒤틀 때마다 내 자리도 함께 진동했다. 처음에 열심히 아이를 달래던 부모도 시간이 흐르자 관심을 덜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런 낌새를 눈치챈 아이들은 더더욱 뻗대기 시작했다. 하기사 말귀를 못 알아듣는 녀석들에게 주의를 줘봤자 태도가 바뀔 리 없다. 그리하여 얼마간 몽롱한 정신줄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부모가 되면 나 역시 어린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에 타게 될까. 물론 불가피한 경우가 있겠지. 친인척의 부고라던가 아이 본인의 급환이라던가, 본국의 내란/소요 사태 등등 급히 귀국하거나 출국해야하는 이유야 각각 천차만별일 터. 어느 경우는 되고 어느 경우는 안된다고 딱히 제한을 둘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휴식을 위해 아이를 동반한 여행을 하는 가정이라면, 짧게는 한시간 길게는 열몇시간의 비행 동안 '통제할 수 없는 아이' 를 탑승시키는 것이 가족과 타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여러번 고민해봐야지.



한편 얼마 전 상수동 근처의 중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옆 테이블에 '좋아, 싫어' 정도의 의사표현이 가능한 여아가 부모님과 밥을 먹으러 왔다. 식사 도중 뭐가 못마땅해졌는지 갑자기 떼를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비명소리가 커졌다. 남자친구를 보며 '저럴 땐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지' 라고 얘기했는데, 놀랍게도 그 아이의 어머니가 정확히 그렇게 했다. 아마도 출입문 바깥의 쌀쌀한 공간에서, 아이는 여러가지 주의를 들었을 것이다. 외출 전에 조용히 굴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하여.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를 '아이 기죽을까봐' 제재하지 않는 요즈음 세상에, 그 어머니의 조처는 당연한 일임에도 참 반듯해 보여 빛났다. 아이는 부모 눈치에 민감한 존재다. 그러니 부모는 응당 본을 보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 타인에게 무례한 일을 하면 불이익을 받게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 사회에 민폐 끼치지 않은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아이들이야 무례할 수 있지만, 부모는 그 무례함을 방관할 수 없고 방관해서도 안 된다. 낳았으면 그에 딸려오는 책임도 신경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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