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의 브룩라디 시음회


스무살 초입 때 나이가 한참 많은 분들을 스스럼없이 만나고 다녔다. 미식을 즐겨하고 그 미식에 페어링하는 멋들어진 와인을 알고있는 남자들. 결혼을 했거나 또 혼자 살고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취미생활을 잘 지켜나가고있는 확고한 삶의 소유자들. 요즘말로 하면 아재들이겠지만, 나는 인생에 통달한듯한 그 아재들이 너무나 멋져보였다. 같이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완성된 삶을 손에 넣은 원숙한 여성이 된 기분이었다. 술도 그제서야 배우기 시작했다. 대개는 와인이나 맥주 정도를 권하였으나 굳이 위스키를 가르쳐준 분이 계셨다.



첫 잔은 글렌피딕으로, 다음 잔은 라프로익으로, 마지막 잔은 맥켈란으로 마무리했다. 그때는 뭘 잘 몰라서 주는대로 받아마셨고 이제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안동소주나 날름 거리던 내게 술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향(부케)은 신기함 그 자체였으며, 입 안에 머금고 있을수록 시시각각 달라지는 생경한 맛 역시 근사했다. 첫번째 시음의 영향이 컸던 탓인지, 나는 특히 아일라 위스키를 선호하는 취향이 되었고, 현재까지는 보모어를 가장 즐겨왔다. 그런 연유로 1월의 브룩라디 시음회는 반갑고 또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브룩라디의 아시아 브랜드 앰버서더인 머레이 캠벨 (이분은 와인을 하실 이름인데...) 씨가 영어로 시음회를 맡아주셨다. 위스키 문외한인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아일라 섬은 한국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인데, 실제로 주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 목축업에 종사한단다. 식량의 대부분을 소진해 조금의 술로 바꾸어나가는 과정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겠으나, 여러 번 문을 닫고도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덕분에 피트향이 그윽하게 입혀진 술맛을 전하게 되었다.



딱히 훈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곡물 자체에 깔린 피트향이 위스키의 복합적 향미를 형성한다. 브룩라디의 경우 떼루아의 개념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아일라 내의 농장으로부터 공수한 보리&맥아로만 술을 빚는다고 강조하였으며 그 점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시음이다. 술집에 가면 종종 선반에 보이는 무광의 푸른 병. 브룩라디 스코티쉬 발리다.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부드러움이지만, 아일라 발리 쪽이 미묘하게 직선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다. 포트샬롯은 한층 더 강렬하여 슬슬 매캐함이 느껴졌다.



이 녀석은 온더락으로 먹는게 좋겠다고 결정한 다음, 마지막 타자인 옥토모어를 즐겼다. 대장주답게 입술에만 닿아도 시큰거리지만 대책없이 화사하지는 않다. 조금만 입에 머금었다가 삼키면, 목울대를 심각하게 죄어드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잔상이 살짝 지나면 급격하게 단정한 마무리가 되므로, 흡사 술을 '안 마신듯한' 기분이 든다. 싫은 일이 앞다투어 닥친 날, 나이트캡으로 한잔 걸치면 기분좋게 숙면할 것 같다. 한국 시장에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언젠가 피트 향 넘실대는 아일라 섬에 방문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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