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 리버 (Wind River , 2016)


기대없이 봤는데도, 괜스레 여운이 짙어 두고두고 기억나는 영화들이 있다. 최근작 중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더 저지> 가 그랬고, 올 가을에 봤었던 <윈드 리버> 가 그랬다. 새하얀 설원이 등장하는 풍경 때문일까, 전반부를 관통하는 시가 인상깊어서였을까. 요즘처럼 눈이 몰아치는 계절이 되니, 새하얀 눈을 밟을 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는 커녕 시린 눈 밭을 맨발로 정신없이 달려나간 나탈리가 떠오른다. 폐부를 도려내는 찬 공기와 감각이 사라지는 발가락과 안면, 그리고 공포. 나라면 그렇게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을까.



혹자는 이 영화가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디언 차별 의식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영화이며, 뿌리 깊은 차별주의를 걷어내자는 취지라고 말한다. 제목부터가 인디언 보호구역인 '윈드 리버' 를 차용하며, 영화 내에서 공격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거나 편견에 시달리는 대상이 모두 인디언인 관계로 마냥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좀 더 단순하게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는 강한 놈이 살아남고 약한 놈은 스러진다는 약육강식의 메세지가 반복되는데, 신무기를 들고 등장한 미국인이 원주민들을 도륙하고 땅을 빼앗는 상황과 겹친다.



다만 '인디언(피해자)-백인(가해자)' 라고 보기 어려운 요소가, 코리의 존재다. 그는 백인이지만 인디언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며, 인디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굳이 영화 속에 이런 위치의 '남자' 를 등장시킨 것은, 인종 간의 대립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살아있는 존재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적인 기질과, 그것이 집단성을 지니게 될 때의 위험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구태여 인디언 보호지역이라 말하기 이전에 이 고장은 눈폭풍 한방으로 모든 것이 은폐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겨울의 설산이다.



광산 직원들은 나탈리가 '인디언' 이라서 겁탈한 것이 아니다. 동료가 독점하는 '암컷', 언제든 쉬이 사냥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연약한 '암컷' 으로 보았기 때문에, 본인들의 힘과 집단력을 이용해서 욕정을 해소했다.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었기에 나탈리는 무력하게 성폭행을 당해야했고, 끔찍한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쉼없이 발을 놀려 달아나야 했다. 술에 취해 짐승처럼 군 놈들이야 말해 입아픈 죽일 놈들이지만, 상황을 그 지경까지 끌고간 나탈리 커플의 부주의함도 생각해볼만 하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남자 여럿과 여자 한 명.



어렸을 때 부터 주입시킨 도덕률과 지켜야할 '법규' 들이 왜 있겠는가.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함을 절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절제를 하기에 '동물' 이 아닌 '인간' 인 것이고, 규칙을 지키는 사회에서 성장하기에 물리적으로 더 강력한 타인들로부터 '권리' 를  보호받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윈드 리버처럼 '규칙' 이 깨어지거나 은폐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잠시 '인간다움' 을 내려놓기도 하는 법. 그렇기에 마지막 생존자를 짐승처럼 다룬 코리의 마지막 사냥이 이해되고, 만족스럽다. 속 시원한 처벌이었고 모자라거나 지나침 없는 복수다.



한편 FBI 요원으로 등장한 제인의 역할은 생각보다 밋밋하였다. 여성으로서 가지는 장점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지극히 '약자' 의 포지션을 취하기에 아쉬운 기분이 든다. 제레미 레너에게 멋진 모습을 모두 넘겨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솔직히 그녀는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강자였던 '코리' 와 연대하였기에 살아남았다. 생존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든 인간은 똑같이 무력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이타적인 이들이 승리를 거머쥔 결말을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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