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르틴베이커리 】 용산구 한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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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우연히, 흘러내리듯 말캉거리는 덩어리를 목도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반죽은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경쾌한 리듬으로 테이블 위를 굴렀다. 2KG 됨직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어쩜 토란잎 위의 이슬처럼 움직일 수 있다니. 분명 만지면 황홀한 기분이 들만큼 촉촉하겠지. 무엇을 만들기 위한 반죽일까.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알고보니 그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타르틴> 빵집의 레서피대로 만들어진 반죽이었다. 그러므로 내게는 언젠가 저 빵집을 방문해보고 말겠다는 조금의 야심이 생겼는데.


미국이 어디 가까운 동네던가. 기회가 있으면 먹어보겠다는 결심만 했을 뿐, 그 봉긋하고 몽실거리는 반죽의 기억은 서서히 장기기억 창고 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달 전이었던가. 한남동 세컨드 키친 자리에 왠 빵집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근에 독일빵으로 독보적인 <악소>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자리를 옮겼을만큼 세가 부담스러운 곳이다. 지하철역이나 업무지구와 가까운 것도 아닌데 와인으로 단가를 올릴만한 레스토랑도 아니고 고작 '빵집' 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파리바게뜨 본점이라도 들어오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메뉴판에서만 찾을 수 있는 식사 메뉴들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주문할 때 못시키면 다시 줄 서야 됨 (..)


어떤 약속이 오고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주그룹의 젊은 대표이사가 큰일을 해냈다. 무려 <타르틴> 의 국외지점을 런칭한 것이다. 긴자에도, 홍콩에도 진출하지 않은, 미국인의 워너비 빵집. 잊고있던 컨츄리 브래드가 갑자기 현실 속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결국 '오픈 시간이 1월 28일 아침 아홉시. 대대적 홍보는 없었고, 교통편도 불편한 위치니까 10시 정도까지 만 가도 빵이 모자랄 일은 없겠지?' 라고 주판을 튕겼다. 문제의 당일. 달디단 아침잠을 포기한 댓가로, 가게 밖에 길게 늘어선 행렬을 마주치게 된다. 아침 기온은 영하 5도.


장발장이 훔쳐간 빵, 깡파뉴를 닮았지요? 이것도 나중에 먹어볼 빵 중 하나, 포리지. 18,000원.


앞에 서있는 숫자만 세어서는 마흔 명인데, 수량에 맞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니 주문 단계에서 자꾸만 시간이 걸린다. 40분을 오들오들 떨고나서야 겨우 외풍을 막은 입구에 당도했고, 다시 15분을 기다려서야 진열대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라고 해야할까. 현재 진열되어 있는 빵들만 구매할 수 있단다. 특정 빵을 예약 주문하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해당 빵이 나오는 시간대에 다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단다. 결국 나놔있는 빵들 중 크롸상과 차돌박이 반미를 골랐다. 적당히 요기가 가능해보였고, 별로 비싸지 않을것 같았다.


나는 위층에 자리를 잡았고, 주문을 마치고 올라온 남자친구의 표정에서 분노와 한탄을 읽었다. 운동화 한짝 만한 반미가 무려 만칠천원이란다. 맛이 없으면 용서가 안 될것 같은 값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불평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맛이었다. 베어물자마자 가루처럼 바스라지는 크롸상은, 바삭한 표면에도 불구하고 촉촉한 속살을 자랑한다. 켜켜이 나뉘어진 결과 그 사이의 기공들이 드러나는 단면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일정도다. 짝꿍은 현대백화점의 이즈니 베이커리 크롸상을 좋아하지만 이집도 괜찮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차돌박이 반미, 17,000원. 엄청나게 먹어보라고까지 추천 못하겠지만 맛은 있다. 남이 사주면 이거 고르세요.


다음에는 속살이 훤히 보이는 반미 차례다. 빤히 보이는 내용물이지만, 그런것치고 뻔한 맛은 아니더라. 어째서 이토록 새콤하고, 뜬금없이 훌륭한가. 이빨로 차돌박이를 원하는 만큼 끊어내기가 살짝 어렵다는 점만 빼면, 시작부터 끝까지 압도적이었다. 샌드위치 종류는 속재료가 맛을 좌지우지 하는거라 생각했는데, 빵맛이 이렇게 중대한 요소일 줄은 몰랐다. 반절로 나눈 빵덩이는 속재료와 균형을 이루는 적당한 두께다. 살짝 쥐어도 찰떡같이 속재료를 움켜쥐고 있는데다 입안에서 모든 요소가 쉽게 어우러진다. 빵요리라고 해야할까.


요컨대 기본이 잘 되어있는 곳이다. 문을 나설 때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컨츄리 브레드를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바로 다음날 점심시간을 쪼개 한남동으로 달려왔다. 평일 점심 때는 직장인이 없을거라는 계산이었는데, <타르틴> 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어제보다 더 긴 행렬이 있었고, 조용히 차를 돌리며 점심을 굶었다. 이제는 새벽에 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기에, 아예 출근길에 들렀다. 줄이 없어서 신나게 달려갔지만 시골빵은 보이지 않았고, '지금 예약해야 오후2시에 가져갈 수 있다'는 답변을 듣는다.


크롸상보다는 뺑 오 쇼콜라가 더 맛있었습니다. 햄치즈 들어간 크롸상 먹으면 또 어떻게 순위가 바뀔지 모름.


결국 뺑오 쇼콜라와 시골빵을 결제한 다음, 오후에 다시 들르기로 했다. 먼져 가져간 뺑 오 쇼콜라는 참지 못하고 법원 앞에서 꺼내들고 말았는데, 가히 황홀한 맛이었다. 입가에 초콜렛이 묻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인정사정없이 맛있었다. 켜 하나하나가 바삭함을 유지하는 정성스러운 패스츄리. 일본에서 처음으로 paul 에 갔을 때에나 느껴봤나. 패스츄리가 이 정도면 대표메뉴인 사워도우는 얼마나 대단할까? 하루종일 나의 시골빵을 염원했고, 점심 무렵 드디어 채드의 대표작을 손에 넣는다. 빵봉투를 건네받는 순간 느껴진 묵직함.


무슨 잡지책 들어가는 빵처럼 나와서 대만족한 사진. 시골빵. 컨츄리 브래드. 16,000원.


크고, 아름다워. 일반적인 도마에 꽉 들어차는 크기의 빵인데, 자동차 조수석에 있어도 기죽지 않을만큼 넉넉하다. 신생아를 대하듯 조심스레 안아들고, 기쁜 마음을 담아 끄트머리를 움켜뜯었다. 단단하게 생긴 크럼이지만, 손으로 무리없이 뜯기는 수준이다. 바삭하지만 질기지 않게 구웠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탄맛이 심하게 나는 편은 아니다. 가생이부터 가열차게 꼭꼭 씹어나갔더니 드디어 보들한 속살이 드러났다. 콧속으로 훅 시골 냄새가 말려든다. 어린 시절 소농장 하시던 큰이모부 댁에서 여물을 준비할 때 바로 이런 내음을 맡았다. 


속살의 찰짐과 기공을 한번 보아주세요. 기가막히게 쫄깃한 단면입니다.


기분좋게 포근하고 얼마간은 달착지근한 향기. 강렬한 새콤함으로 시작하지만, 뒷맛은 보리밥처럼 부드럽게 마무리되는 '곡취'. 뭣보다 빵결이 놀랄만큼 습기를 머금었다. 손에 간신히 들러붙지 않는 수준으로 찰지다. 갓 만든 설기만큼 쫀쫀해서, 떡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의 천연발효종 빵집들 중 을지로의 <잇츠 크리스피> 가 50점이라면 압구정의 <뺑드 빱바> 가 70점 정도, 아현동 <위드 브레드> 영등포 <밥아저씨네 빵> 이 90점 정도 된다. 헌데 <타르틴>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곧바로 100점을 매기게 되는, 그런, 빵이다. 


어쨌든 내 위장은 (채드가 국내에 있는동안) 이 집 빵을 힘 닿는대로 먹어두라고 속삭였다. 천연발효로 만든 스타터와 르뱅. 최대한 도정 시일이 가까운 밀가루를 넣어 반죽을 하고, 치대기와 접기, 휴지기와 숙성기를 오가며 충분히 시간을 들인 다음, '퇴근시간에 맞추어' 구워내는 빵. 저녁식사에 곁들일 주식으로, 그 다음날 아침을 돕는 토스트로 낮과 밤을 오가며 활약할 수 있는 빵. 서울에 <타르틴> 이 생겼다는 것은, 올해의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다. 미국 직원들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 이번 주말 시간을 내어 눈 딱 감고 줄은 선 다음 즐겨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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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별로 갈 생각은 없었는데 쓰신 글 보고 다녀왔습니다. 밖에서 10여분, 안에서 20여분 기다렸으니 그렇게 긴 건 아니었지요'ㅂ').
      덕분에 아주 좋은 공부 했습니다. 제 바로 앞 사람이 마지막 크로아상을......가져가는......비극이......있었지만......크흑ㅠㅠ.., 촌빵은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웬만한 떡보다 훨씬 쫄깃한데도 성숙하기보다 풋풋한 그 느낌이 참 좋더군요. 정말 시골빵이네요 이거.

      아, 각오는 했지만 아끼고 아껴서 5만 5천원어치만 샀어요............ㅠㅠ)............
      누룽지빵하고 크로아상 정도는 다시 맛을 봐야 하는데 또 언제 갈지............ㅠㅠ)......

    • 적당한 시간대로 (?) 기다리신것 같습니다. 계산하기 두명 전쯤 되면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지요. 계속해서 진열대를 체크하고 B안, C안을 만들어 두게 됩니다. 5만5천원이라는 금액을 보니.. '그래도 먹어볼만큼은 담아가보자' 라는 각오가 아니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전 누룽지빵도 궁금하고 바나나 타르트나 초콜릿 케잌 같은 디저트류도, 쓸데없이 궁금하답니다 ㅋ_ㅋ

    • 비밀댓글입니다

    • 힘들게 가서 크루아상을 건지셨다니 애도를 표해야할지, 축하를 드려야 할지. 전 나이들수록 먹고싶지 않은데에 돈을 쓰고싶지 않아서, 다른 메뉴들 중에도 땡기지 않는것은 과감히 건너뛰었더랬습니다 ㅎㅎ '갓' 만든걸 드셨기에 '더' 맛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들고.. 제 남자친구 경우엔 이즈니 베이커리 크루아상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조만간 현대백화점으로 출동할 예정입니다. 외국 스텝들이 일주일만에 돌아갈 줄은 몰랐기에 좀 아쉽지만, 그 전에 다녀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수준을 얼마나 유지할지 궁금하네요 :) 가까운 곳이라면 주말 오전에 짬내서 가보실만...

    • 저 오늘 휴무라서 다른건 다 포기하고 4시쯤 갔는데. 컨트리빵 1분 기다리다 샀어요~
      제빵사 짬밥 5년동안 이런 사워도우빵 첨이에요.. 16000원이 안아깝더라구요.
      다 때려치고 이집 초보시다로 좋겠다 싶었습니다.
      사워도우는 젖산과 초산이 위에서 흡수가 잘되어서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다음엔 크루아상 쇼콜라 먹어보러 또 갈게요~~ 후기 너무 잘봤습니다.

    • 와. 좋은 타이밍에 좋은 빵을 사셨네요. 제가 이 집 모든 빵을 먹어본게 아니라서 가장 베스트의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한번쯤 먹어보면 좋을만한 빵이죠. 이집 빵이 마음에 드셨다면, 영등포구청 인근의 밥아저씨 빵집? 도 좋아하실것 같습니다. 그쪽은 조금 덜 정제된 느낌이긴 한데, 꽤 닮았어요. 여하튼 현직 제빵사 분이 칭찬해주시다니 뭔가 설득적 권위가 쌓이네요 ㅎㅎ 현재는 현지직원들이 다 빠져나간
      상태라서, 여전히 맛있을런지 조금 걱정스럽긴 합니다. 며칠 뒤에 다시 한번 가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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