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컨피덴셜 (L.A. Confidential , 1997)


고등학교 때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했다.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공부하다가 몸 망친다며 걱정을 하셨지만, 정작 내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칸막이 독서실이 아닌 도서관으로 향해 무수히 많은 소설들과 영화를 돌려볼 속셈이었던 것. 마키아벨리나 야스퍼스의 책들도 더러 스쳐지나쳤지만, 종착점은 추리소설이었다. 쉽고 빠르게, 생각하지 않고 쭉쭉 읽을 수 있어서다. 나름대로 원칙도 있었다. 제프리 디버나 아가사 크리스티는 읽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는 읽지않는 식이었는데 하드보일드라는 장르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누가 와이프를 그렇게 대하라고 가르쳤지?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하지만 꼭 한 순간을 정해야 할 때, 정의의 편에 서고마는 바보.

밉상 받치는 역할이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듦. 그리고 나는 실제로 이런 캐릭터임 (..)


돌이켜보면 왜 그랬을까 싶은데, 어린 맘에는 그저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데에 고작 두 문장을 할애하지 않는 책. '누가' '왜' 그랬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책. 요컨대 내 입장에서 중대한 살인을 '행인이 죽었습니다' 정도로 흔쾌히 넘어가는 것이 불만스러웠을 뿐이다. 그러나 인생사 여러 일들을 겪다보니, 차츰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지 알게 되었다. 훈훈한 이야기만이 '인간미' 를 뜻하지는 않는다. 과장없이 덤덤하게, 어디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도 충분히 인간미 넘친다. 


인상 참 좋은걸로 1점 먹고 들어가는 반장님.

이런 이미지는 사실,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너무 강렬했어서. 어쨌든 립스틱 색이랑 홍채색 몹시 예쁨예쁨.

한대 친것 같겠지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당신이 무엇을 욕망하든.


<LA 컨피덴셜> 로 말할것 같으면, '누아르' 나 '하드보일드' 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달콤쌉싸름한 어른들의 영화다. 부흥기에 접어든 천사들의 도시. 경제는 발전하지만 이면의 범죄도 날로 화려한 꽃을 피운다. 창궐하는 범죄조직과 마약, 매춘. 그에 편승하거나 혹은 맞서면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해나간 로스앤젤레스 경찰들. 카메라는 다양한 경찰의 생활을 쫓는다. 여자에 대한 폭력에 엄격한 폭력경찰(버드)가 있는가하면, 편하게 사는 법을 아는 세속경찰(잭) 이 있고, 출세욕과 정의 사이에 외줄타기중인 초보경찰(에드)도 있다.


아니 여기도 폭탄주를 말아먹네.


모두가 평화로워야할 성탄절. 술에 취한 경찰 한 무리가 유치장에 잡혀온 멕시코인들을 흠씬 두들겨 팬다. 에드는 경찰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고 승진하겠다는 일념에서 밀고자를 자처하여, 용의자 폭행 경찰들을 퇴직시키는데에 일조한다. 의리없는 놈으로 낙인찍힌 것도 서러운데, 재수없게도 권고사직을 당한 형사 한 명이 왠 카페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힌 에드는 용의자로 추린 세 명의 흑인들을 조사하다가, 그들의 무고함을 발견하고. 와중에 버드가 시체들 사이에서 언젠가 마주친 아름다운 여자를 기억해낸다.


넥타이 무늬가 처음 보는 종류였음. 기하학 이라고 해야할까? 쓸데없이 시선 끄는데.

롤렉스 시계는 정확하다 이거야.

옛스런 영화답지 않게 엄청 리얼했던 장면. 한 군데 모아놓고 쏴죽인건가? 싶었음.

나쁜 사람들은 꼭 좋은 집 살더라.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스톤 집도 예쁘던데 ㅠㅠ


한편 잭은 여자를 배우와 닮은꼴로 성형시켜 정치인에게 팔아넘기는 피어스 페치에게까지 접근하게 된다. 사실 도처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거대범죄의 일부분으로서, 다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부패의 일면을 조사하게된 것이었는데, 가장 가깝게 진실에 다가섰던 잭이 범인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에드와 버드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증오하는 존재지만, 사건의 해결을 위해 합심하고, 기적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첩첩 쌓이는 시체들과 끝없는 총질. 인간에 대한 불신과, 부조리하고 극단적인 폭력의 현장. 참으로 누아르 영화답다.


대놓고 니그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해서 시대상이 드러나는데, 마음 아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도 아주 비슷한 옷과 미소로 등장함.

역대급 반전이라고 하면 바로 이런 것이지. 빵!!!! (헐...)


또한, 현실적이다. 성추행과 비리도 모자라 비선실세가 판을 친 한국사회의 썩어빠진 모습을 생각해보라. 영화가 그리는 LA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지 않은가. 정의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시민의 방패막이 되어야 하는 경찰들. 그들도 생존을 고민하는 정치적 동물이기에 마찬가지로 닳아빠진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출세지향적인 에드가 '롤로 토마시' 를 찾아내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순간이 되면 응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환상임을 알기에, 극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저도 이런 거실이 갖고 싶습니다 (..)

메멘토로 유명해졌지만, 나는 왜때문에 웨이랜드 회장님 인상이 더 강렬한지(..)

사실 영화 속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은 검사장이 버드한테 붙잡혀, 난간에서 탈탈 털리는 장면.


뷰티풀 마인드에서 그토록 지성미 넘치던 러셀 크로우가 혈기왕성한 마초맨으로 나와서 신선했다. 그의 캐릭터를 보는순간 로저 하빌랜드가 떠올라 영락없이 87분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에드 맥베인이 아닌 제임스 엘로이 원작이라고 해서 다시 읽어볼 예정이다. 케빈 스페이시의 능글맞음은 참 절묘했고, <나인 하프 위크> 에서 다소간 헬렐레했던 킴 베이싱어는 똑부러지는 베로니카 레이크(스타일)로 탈바꿈 했다. 사이먼 베이커의 남창 역할은 충격적이었지만, 꽤 어울려서 슬펐다 (..) 여하튼 커티슨 핸슨 최고의 수작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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