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La forma del agua, 2017)


나이가 좀 많은 경상도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절대로 '사랑한다' 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에게는 의미가 큰 단어라 되도록 신중하게 말하고 싶다. 좀 창피하기도 하고.' 라는 이유를 들었는데, 내 입장에선 그저 불만스러울 뿐이었다. 질 수 없어서, 나 역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때까지의 어떤 연애보다도 죽이 잘 맞았건만, '사랑' 이라는 단어가 끼어들지 않으니 그저 '많이 좋아하는 사이' 처럼 서로를 대했다. 일년 정도가 지난 후, 별다른 이유도 없으면서 이별을 고했다. 



더 자주 '사랑한다' 고 속삭였더라면, 우리 관계는 달라졌을까? 말을 하고, 표현을 한다는 것. 주장하고 격돌하고, 부서지고, 또 다시 그러모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들이 없었기에, 피상적으로 스쳐버린걸까? 매일 '사랑해' 라고 말하는 연애를 시작한 이후에도 한동안 고민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주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존재여부 조차 입증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표현을 해야만 불쑥 '사랑이 존재한다' 고 믿는건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표현이 부족해서 헤어졌다는 것은, 그냥 내가 지은 핑계였을 뿐이다.



여기, 나의 경험을 극단적으로 일축하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를 보자. 주인공 엘라이자는 소리를 듣지만 말을 못하는 처녀로, 미국 항공우주센터의 청소부다. 그녀는 일이나 능력, 욕구에 있어서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사람이지만, 늘 자신을 결여된 인간으로 치부한다.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 같은 인간이 끊임없이 '너는 벙어리에, 약한 존재고, 한낱 청소부' 라고 주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미에서부터 실험체 하나가 도착한다. 미국-소련 간 우주경쟁의 시대, 육지와 물 모두에서 숨쉴 수 있는 비법을 연구하기 위함이다.



엘라이자는 실험체가 자신처럼 '결여되어 있고' '부족하고' '외로운 존재'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교감할 방법을 찾던 그녀는 덥썩 달걀을 건네주고, 준비한 음악을 들려준다. 실험체의 앞에서 젤다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에게는 세간의 잣대라는 것이 없으니, 자신은 부족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요.' 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엘라이자는 실험체를 통해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간다. 말이 개입하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어떤 감정.



누가 길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이 아니랄까봐 영화 속 생물체는 첫인상부터 징그럽고 불쾌하다. 파충류의 그것처럼 보이는 피부와 뜻을 알 수 없는 소리. 간격이 멀리 떨어진 눈. 인간과 다른듯 비슷한듯 오묘한 종. 그러나 엘라이자는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채로 실험체를 끌어안고, 돌보며, 종국에는 교합을 한다. 재밌는 사실은, 그 장면에서 별달리 혐오감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냐면 그 둘이 동등한 입장에서 '사랑'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둘의 사랑은 물과 같아서, 상대의 모양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를 합칠 수 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배경에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평가가 개입되어있는가. 외모, 성격, 직장, 집안과 학벌, 나이. 태생적으로 고를 수 없었던 부분까지 포함하여, 우리는 '상대' 가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인지 검토한다. 많은 것을 갖추고 있는 '당신' 이기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엘라이자는 상대'만' 보는 사랑을 한다. 영화는 딱 한 번, 그녀가 목소리를 드러내는 장면을 선물한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모를거라며 괴로워하면서도, 결코 상대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다. 그녀의 연애는 배울 점이 참 많다.



그녀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는 직접 영화를 보도록 하자. 길 감독이 판타지라는 장르를 선택할 때는 기필코 해피엔딩을 만들어내는 의지가 배어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감상하시기를. 개인적으로는 '결여' 에서 동질감을 얻는 엘라이자-실험체 커플보다, 서로 다른 것을 알면서도 빠져드는 커플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고문을 자행하던 스트릭랜드가 일순간 실험체를 이해하고 사랑하게되는 전개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사랑으로 가는 과정이 버겁긴 했어도 성공했다면 꽤 극적인 장면이 되지 않았으려나.



화면 전반은 청(록)색이 지배하고 있다. 깊은 바다의 푸른빛이 아니라 햇빛이 닿는 수면 근처에서 보일법한 따듯한 초록빛이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구나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있을 양수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지도 (너무 갔나?) 모르겠다. 캐릭터마다 부러 만들어낸 티가 팍팍 나는 설정 - 인종 갈등, 동성애, 종교, 권위주의 - 도 위트있었다. 모든 수법을 총동원해 관객의 '편견없는 관용' 을 부추기는 영화다. 꽉 막힌 사람인지라 괴생명체까지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보통 인간을 사랑하려는 노력 정도는 잘 해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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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개봉 당시 엄청 보고싶어했던 영화였는데 결말이 마음에 안 들까봐 선뜻 보지 못했어요.
      글쓴이님의 영화에 대한 따듯하고 다정한 리뷰를 보니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자야겠네요.
      저도 서울한량님처럼 따듯한 글을 쓰는 블로거가 되고 싶은데 혹시 여유가 되신다면 초대장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래 메일 첨부합니다.
      gmldnjs0074@naver.com
      감사합니다. 글이 참 차분하고 좋네요, 종종 들러서 리뷰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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