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자피케이션자하 】 종로구 통인동 - 문닫음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콩에서 나는 그 풋내가 싫고, 씹었을 때 퍼석퍼석하게 부서지는 식감이, 맹맹하고 덤덤한 맛이 싫다. 비슷한 이유로 단팥죽이 되기 전의 팥도 싫어한다. 그러나 질감이나 맛을 변형시킨 콩, 이를테면 조그만 알갱이도 없이 완벽하게 갈아놓은 완두콩 수우프라던가, 달콤짭조름하게 조려낸 콩장, 잘게 다져 김치찜에 넣는 비지, 갓 건져올린 따끈한 생두부 등등은 아주 잘 먹고 심지어 좋아한다. <피자피케이션 자하> 에서 뜨레피 딸리아텔레 메뉴 설명을 보며 완두콩이 들어간 것을 보았고, 우려 속에서도 과감히 주문해보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제 형태대로 나온 완두콩이었지만 이로 깨물 때마다 잘 여문 옥수수 알갱이가 터지는듯했고, 고르곤졸라 치즈와 크림소스의 배합이 텁텁한 맛마저도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피자로는 오랜만에 시켜본 시그니쳐 - 내멋대로 정한 이 집의 베스트 메뉴 - 인 수퍼페퍼로니를 주문했다. 적절한 두께로 잘려진 초리죠는, 잘 튀겨낸 베이컨 처럼 환상적인 바삭함과 고소함을 지니고 있는데, 새콤한 토마토와 상큼한 바질, 살짝의 탄맛과 곡물의 덤덤함으로 하나의 테두리를 입혀주는 빵까지 곁들여지면 그야말로 완벽한 피자 한 판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점심을 즐기고 온 얼마 후, 이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고없는 일별이었다. 심지어 저녁 때 이 가게 앞을 지나가며 짐 싸는 것 - 사장님은 안 계셨다 - 을 보고 문틈으로 그동안 맛있게 먹었고, 감사했다는 편지까지 밀어넣고 왔다. 말도많고 탈도많았던 통인동 임대료가 도화선이 된 것일까. 아니면 더 넓은 세계로 수행을 나가시는 건가.



2014년 부터, 사장님이 내 얼굴을 잊지 않을 간격으로 이 집을 찾아갔었다. 조그만 오픈 주방이라 눈에 더 잘 들어왔을지도 모르겠지만, 찾아가는 날마다 사장님이 계셨다. 수하생이 피자를 만드는 날도, 맛이 조금 떨어졌다고 실망하는 날도 있었지만, 어쨌든 햇수로 4년 내내 그분은 늘 주방에 서계셨던 것이다. 아니 이건 마치, 프레데릭 바크의 <나무를 심는 사람> 같지 않은가. 누구도 보지 않건만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누구보다 꿋꿋하게 해낸 것이고, 시간이 지나자 별다른 언질도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 판타지와도 같은 체험을, 나는 어떻게 추억하면 좋을까. 셰프님은 언젠가 또다른 피잣집을 차리실까? 혹시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다시금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아, 그때의 그!' 하며 서로를 알아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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