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란 서로를 길들여 가는 과정

  

책을 보면 언제나 신기하다. 문명과 함게 필연적으로 발전했을 문물이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역사상 가장 놀랍고도 매력적인 창조물이라고 생각한다. 본연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었겠지만,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순전히 사적인 이유, 개인의 안부를 전한다거나 교훈,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도 이채롭다. 그 중에서도 궁극적인 장르는 아마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동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가벼운데다, 심지어 통째로 외울 수 있는 서사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동심과 한참 멀어지는 와중에도,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만큼은 문득문득 떠오르고 그때마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심리적,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이런 아름다운 동화 중에서도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책은 성서와 비견될만큼 많이 팔렸다는 <어린왕자> 다.


  

오밀조밀한 그림체도 따듯하지만, 읽을때마다 다른 뜻으로 해석이 가능한 내용이야말로 기가 막히다. 내가 보는만큼, 나의 그릇에 따라 해석의 범위가 달라지는 책인 것이다.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스테디셀러인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얼굴도 취향도 다른 전세계인이 그토록 공감한다면, 다른 책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철학을 누구나 알아듣도록 쉽게 풀어낸 '이야기' 라서 그런게 아닐까. 고차원적인 입씨름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어느 왕자님과, 수많은 별들의 이야기, 여우와 장미가 등장하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야기다. 이런걸 보면 역시 생떽쥐베리에게 존경심을 품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누는 관계, 스스로의 내면에 싹트는 고민, 인생살이에 대한 풍자와 역설, 자연과 동물을 동심의 눈으로 대하는 천진함. 때로는 익살스럽게 때로는 아련하게 보여지는 어린왕자의 관점은 질박해서 더 소중하다.

 

 

다음은 그 가운데서 너무도 유명한 대목이다. "나는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그것은 자주 소홀히 여기는 행동이에요." 여우가 말했다. "그것은 인연을 맺는다는 뜻이지요." "인연을 맺는다구?" "바로 그것이에요." 여우가 말했다. "지금 내가 보기에 당신은 아직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어린 소년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없어도 괜찮아요. 당신 또한 내가 없어도 괜찮구요. 당신이 보기에 나는 수많은 여우와 다른 게 없으니까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돼요. 당신은 나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이고, 당신에게 있어 나 역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될 겁니다……."

 

 

"그럼 너를 길들이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왕자가 물었다.  "인내심이 있어야 되지요."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당신은 나와 좀 떨어져서 ─ 바로 그렇게 ─ 풀밭에 앉아 있어야 돼요. 나는 당신을 곁눈으로 바라보면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죠. 말이라는 건 오해의 근원이니까요.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에 당신은 조금씩 가까운 곳에 앉을 수 있게 됩니다. …… ." 다음날 어린 왕자는 다시 찾아왔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것이 더 좋을 거예요."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당신이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마음이 즐거워질 거예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행복한 기분이 점점 더해지죠. 4시가 되면 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마침내 당신을 보면 행복감에 젖은 얼굴을 보게 될 거예요!"


 

사랑이란 서로를 길들여 가는 것! 나를 쪼개고 당신의 무엇을 더해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군가를 길들이고 또한 길들여지고 있는 중이리라.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보듬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하나씩 잘 달래가며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애지중지 귀염받는 장미가 된듯 포근한 기분이 든다. 이전까지 잘 모르던 내 모습을 알아가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어 자연스레 노력하게 되는 요즈음. 솔직한 마음과 목소리 내는 법을 배우고, 덕분에 한층 투명해지는 내 자신이 더욱 사랑스럽게 여겨진다. 마음이 천천히 은근하게 깊어지는 동안 몰래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의 어린왕자님도 나를 가꾸고 길들이는 시간이 행복해서 어쩔 줄 몰랐으면 좋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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