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we are generous in small


어린시절 사랑을 못받고 자란 것도 아니건만, 좋아하는 사람한테 완전히 목을 매는 스타일이다. 어머니께서는 혀를 끌끌 차시며, 남자친구가 떠나는 건 전부 '내 탓' 이라 하셨다. 적당히 재지도 않고, 튕기지도 않고, 마이 페이스로 끌어들이지 못하니까, 상대방이 만만히 보는거란다. 처음에는 그 말이 정말인 줄 알고서 부족한 스킬을 탓했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얄궂게 행동하는 게 외려 꼴불견 아니던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충성 맹세를 하는게 뭐가 나쁘지? 솔직하게 자신을 꺼내 보여주면 따라오는 장점이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



물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당신도 솔직하게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새롭게 알아차린 상대방의 모습이 예상보다 더 별로일지라도,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상대방 반응을 짚어가며 임기응변과 가식으로 행동하면, 오히려 연애가 아주 편해진다. 다만, 어디까지나 내 성격을 새로이 창조하고 꾸며내다 보니 언젠가는 들키게 되어있다. 그 시기가 빠르냐 늦냐가 다를 뿐이다. 연애 초보자인 나로서는, 상대방이 처음부터 내게 많은 것을 오픈한채로 다가온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해 마음껏 속을 썩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고 있으니, 용케 잘 얻어 걸렸다.



지금 남자친구는 시종일관 솔직하게 말하고, 일관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아주 솔직하고, 내게 쓴소리를 하든 싫은 이야기를 하든 민감한 주제에도 거침이 없다. 완곡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얄짤없다. 연애 감정을 듬뿍 담아 꿀같은 거짓말을 해주기 보다, 나라는 인간 자체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객관적인 제3자의 감상평을 직구로 던져준다. 처음에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는데, 지금은 남자친구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이니까, 신뢰한다. 모자란 내 모습을 냉정하게 조목조목 지적해 준다. 부모님의 훈계처럼, 나무라긴 나무라되 경멸이나 비하의 감정은 일체 배제하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은 말만이라도 애인 편 들어주는게 뭐가 어렵냐며, 그런 소리 들을 필요 없다고 대신 역정을 내준다. 하지만 너무나 빤하게도 '장복' 을 하려면 달콤한 독보다는 씁쓸한 약이 낫지 않은가. 오랜 지우들만이 뼈아픈 충고를 던질 수 있는 것처럼, 내 남자친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사실을 날카롭게 짚어내며 그만이 할 수 있는 독설 (?) 을 한다. 연인으로써 이해받고 사랑받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연인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써 인정받고 나면 자존감이 훨씬 더 충만해진다. 탁월함 뿐만 아니라 부족함 역시 진지하게 관찰해 주는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것. 자존심 운운할 일이 아니라 감사히 여길 일이다.



뿐만 아니라 매사에 열려있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만을 밀어붙이는 연애라면, 오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내가 생각한 '멋진 사람' 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신뢰하고 애정하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애초에 선입견이 많은 사람인지, 혹은 선입견을 가졌더라도 쉽게 벗어던질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부터 잘 알고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초보자' 는 그게 참 어렵다. 나 역시 이 부분을 오해한 적이 있다. 남자친구가 보수적인 면모를 지녔기에, 변덕스러운 나를 절대 못 받아들일 거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어느날, 돌연히 달라진 모습을 깨닫게 됐다. 이 사람이 변한건지, 내가 변한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서로가 서로에게 좀더 말랑말랑 관대해졌다. 사귀고 난 직후 처음으로 크게 다투면서 '어라? 신기한데!' 싶었다. 일반적으로 의견 충돌은 곧 상대방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되도록 삼갔고, 언성을 높여 싸울 정도가 되면 이미 극렬한 스트레스를 넘어선 수준이라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하는 연애를 해왔다. 싸움은 이별하기 위한 수단이라 여기게 되었고, 아주 작은 다툼일지라도 관계 지속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이 날 우리가 싸웠던건 한 장의 카드 때문이었지만, 실제의 원인은 나의 괜한 똥고집에 있었다.



잘못했다는걸 알면서도 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바락바락 대들었는데, 막판이 되니까 남자친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선뜻 종전 선언을 했다. 그것이 단순히 싸우기 귀찮아서인지, 나를 좀 더 이해해주려는 노력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아는 것은 남자친구가 먼저 한발 물러서줬고, 그때 어쩐지 고마운 맘이 들었다는거다. 이후에도 내가 천방지축으로 굴다가 '여기서 끝일까.' 불안해 하고 있으면, 차분하게 내 잘못을 되짚어주고, 사과할 경우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다. 상대방이 양보하고 참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의 아집에서 빠져나와 스르르 복종하게 된다.



결국 남자친구는 나보다 훨씬 노련해서, 말괄량이처럼 구는 나를 가볍게 제압할만큼 충분히 성숙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렸을 때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잘못했어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면, 이내 부모님께서 '그래, 솔직하게 말하니 좋다, 다음번부터는 그러지 마라.' 하시고 용서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남자친구에게서 그런 모습 (?) 이 보이니까 적당히 편안하고, 지당한 존경심이 든다. 물론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좋아하지 않겠지만, 어쨌든간 일정 수준의 관대함이 있다는걸 알게 되어서 한결 안심했다. 우리의 관계가 장미 넝쿨처럼 건강하고 아름답게, 튼튼하게 얽혀나가길, 바라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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