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순간에 아주 사소한 대목에서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반 담임 선생님이 물리 담당이셨다. 학교에서 개최하는 물리 캠프에 누군가 한명은 참석해야했고, 눈이 마주친 내가 얼결에 떠밀려 가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이 대목이다. 거기서 우연히 만났던 조교님과 8년 정도 연락을 주고받다가 결국 사귀는 사이가 되고만 것.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알고지낸 조교님이 갑자기 왜 괜찮아 보였느냐면, '칼질' 이 훌륭해서다. 같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는데, 고기가 꽤 질겨서 칼질에 난항을 겪고있을 떄였다. 남자친구가 낄낄 웃더니, 자기 앞으로 대뜸 접시를 가져가 스테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오랜 유학생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먹기좋은 크기로 조각낸 스테이크를 내 앞접시에 덜어줄 즈음엔, 그 유려한 솜씨에 반해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한편 남자친구 역시 밥을 먹다가 내게 반했다고 한다. 생선구이 집에서 갈치를 주문해 먹었는데, 남자친구가 영 가시를 못 바르는게 아닌가. 가시 위치만 알면 다른 생선에 비해 손이 덜 가는 녀석이라, 깨끗하게 살코기를 발라내어 다른 그릇에 덜어주었다. 한참 후까지도, 그는 '갈치 발라주는 여자 너무 예쁘다' 고 되뇌었다. 칼질하고 갈치 때문에 반할 일인가 싶지만, 우리는 모두 우연한 순간에 아주 사소한 대목에서 상대에게 빠지고 만다. 별다르지 않은 행위가 매력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관심이 시작되고, 애정이 쌓인다. 언제 어떤 행동에서 내 마음이, 상대방 마음을 울리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항시 설렘에 노출된 상태로 사는 것이나 다름 없다. 멋진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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